세계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들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시작된 분쟁으로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이 시작되어 4번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여러 차례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여전히 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은 BC997년 다윗왕에 의해 처음 국가를 설립하게 되었고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에 의해 속령이 되어 지배를 받으면서 박해를 받게 되어 유대인들은 전쟁을 일으켰으나 로마에 패배하면서 예루살렘이 정복당했고 신전도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고 이것을 '디아스포라(이산)'이라고 합니다.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슬람교 아래 단결된 아랍인들이 로마를 격파하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팔레스타인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함께 있는 복잡한 종교적 지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오니즘 운동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1897년에 옛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다시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고 이것을 시오니즘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1905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유대인이란 형질, 언어, 문화, 국적을 막론하고 자신을 유대인이라 생각하고 타인으로부터 유대인 취급을 받고 있는 자는 모두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면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의 반발이 심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영향
세계 1차 대전 중 영국은 터키가 지배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전쟁 승리로 위임 통치하게 되면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벨푸어 선언'을 하는 동시에 당시 독일 편에 있던 오스만 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이끌기 위해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하면서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영향
1930년대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유대인 이주자가 팔레스타인 인구의 31%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점점 더 커지자 영국은 이 문제를 국제연합 UN에 일임하였고, UN은 아랍 지구와 유대 지구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승인하면서 이스라엘 성립이 선언되었습니다.
중동전쟁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림이 선포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 독립을 거부하고 선제공격을 하면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기존에 분할되었던 영토의 크기보다 더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고 1974년까지 총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자 평화를 원하게 되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9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국 건설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1994년 7월 5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1997년 이스라엘 총리는 동예루살렘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였고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감행하고 서로 동예루살렘의 주권을 가지겠다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서로 간의 갈등은 악화되어 갑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각자의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문제로 여전히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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